김진명 <도박사>의 개정판 <카지노>지만, 결말이 달라서 <도박사>라는 제목을 가지고 올 수 없었다고 한다.

김진명의 <카지노>는 카지노 내에 있는 ‘바카라’에서 소스를 가져온다. <카지노>는 도박에 연루되어, 인생을 다 놓친 사람들과 져본 삶이 없는 사람들 또 그 안에서 자신의 철학을 세워 살아가는 사람의 이야기다. 결국 뗄래야 뗄 수 없는 돈과 관련된 우리네 삶에 대한 성찰인데, 작가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인간과 돈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 우리가 되묻길 원하고 <카지노>의 끝은 작가 김진명이 생각하는 돈에 대한 삶에 대한 철학이 맞닿아 있음을 책을 통해 알 수 있다.

"맞아요. 도박사는 철학이 있어야 해요. 눈앞에 다가왔다가 멀어지는 돈을 무심히 볼 수 있어야 해요. 그게 돈에 대한 인간의 올바른 자세지요. 돈을 그렇게 많이 다루면서도 결코 돈에 중독되지 않아야 참된 삶을 볼 수 있어요. 나는 가난이 좋아요. 가난해야 눈에 보이는 게 있어요. 인류의 스승들은 모두 가난했어요. 아니, 가난을 자청했어요. 나는 어느 순간부터 평생 돈을 쫓으며 살지는 않겠다고 결심하고 살고 있어요."

김진명의 <카지노>는 ‘도박사’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도박사’는 ‘프로’라는 뜻과 동일하다. <카지노>의 이야기 구조는 간단하다. 사연이 있어 보이지만 깊숙하게 드러나지는 않는 한 때 알아주던 도박사 ‘이서후’, 도박의 맛도 끝도 다 먹어본 도박사 우 프로 ‘우필백’ 그의 제자 둘 ‘혜기, 한혁’과 사랑하는 동생을 도박으로 잃은 ‘은교’ 번갈아 가면서 그들의 이야기가 조금씩 나오고, 그 중심에는 도박에 관련한 이야기로 서로 한데 엮어 이야기가 진행된다.

도박에도 전문 기술이 있을까? 일반적으로는 단순히 운으로 작용할 것이라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작은 미물들에게도 삶이 있고 철학이 있듯 도박도 도박 나름 철학을 가지고 있다. 그것을 어떻게 운용하느냐에 따라 도박에 휩쓸릴 것인지 아니면 도박을 휩쓸 것인지가 결정된다.

"그것은 필패의 길이다. 열 번 중 아홉 번을 이기더라도 한 번 지면 모든 걸 잃을 수 있는 게 카지노 게임이다. 카지노 게임은 그날 얼마를 땄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땄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결과보다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그래서 카지노 게임은 공부처럼 해야 하는 것이다."
"프로에게는 결과가 중요하다. 과정은 아무 소용이 없다. 결국은 이겼느냐 졌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그러나 그 말은 작은 승부를 다루는 사람에게는 맞을지 모르지만 큰 승부에서는 다른 결과를 낳는다. 인생의 승부를 다루는 사람에게 그때그때의 결과는 아주 조그만 티끌일 뿐이다. 그 티끌을 이어주는 하나의 커다란 원칙. 그 원칙에 결손이 나서는 인생의 승부를 결코 이겨낼 수 없는 법이다.

김진명 작가의 책을 즐겨 읽는 편은 아닌데 김진명 작가를 좋아하는 그 덕분에 가끔 책을 읽게 된다. 예전에는 김진명 책이 쉽고 잘 읽혀서 마냥 좋았던 적이 있다. 단순히 책 한 권을 빠르게 읽었다는 것에만 주안점을 둔 것이지.그런데 이번에 <카지노>를 읽으면서는 상당히 아쉬운 점이 많았다. 물론, 빠르게 읽었다. 심지어 앞으로 돌아가 다시 읽어야 되는 부분도 없었다. 빠르게 읽는다는 것이 빠르게 읽힌다는 것인데 즉, 책에서 독자가 생각하게 만들기 보다는 모두 보여주기 식으로 책을 구성했다는 말이 된다.

이것 저것 책을 접하면서 묘하게 내가 놓치는 부분이 많은 책들이 좋아진다. 생각을 해봐야 알 수 있고, 자기계발서가 아니니 정확하게 요점을 알려주는 것보다는 우회적으로 내가 깨닫게 만드는 글이 더 흥미롭다. 물론, 이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이겠지만. 김진명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로 그를 제한하고 싶진 않지만 워낙 픽션에 관한 흥미를 많이 끌어당겨 왔던 작가라 나도 모르게 색이 전혀 다른 <카지노>에도 그의 다른 책들과 비교하고 말았다. 픽션이더라도 어떠한 사실을 흥미진진하게 깨닫는 구성이었다면 어땠을까?내가 안고 가야 할 생각들을 할 기회가 없어 책을 읽는 내내 진한 오락프로그램을 본 느낌이 들었다.

하나 더 덧대자면, 인물구조도 깊숙하게 들어가지 않고 겉핥기 식으로 훑는 느낌이다. 가령 이서후로만 예를 들자면, 여기 이서후가 있어, 도박사야. 그런데 이런 아픔이 있지. 그리고 사랑에 빠지게 됐네. 결심을 했어. 뭐 이런 식이랄까? 결과만 있고 과정이 없다. 이서후는 왜 도박을 필연처럼 해왔었는지, 그 동안 그렇게 쌓아왔던 외로움들이 은교라는 여자 한 명으로 다 접을 수 있는지, 다 적긴 어렵지만 적지 않은 의문들이 쌓인다. 책을 읽으면서 주인공들에게 전혀 해소가 안된 부분들이라 감정이입을 시키기도 어렵지 않았나 싶다. 전반적으로 <카지노>는 그다지 무겁지 않은 책이다.

도로 위에 뿌려진 수 십장의 지폐를 보고 그냥 지나칠 사람이 누가 있을까. 나부터도 목숨을 걸고서라도 몇 장 건졌을 거다. 쉽게 번 만큼 쉽게 사라진다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로또 당첨 자들을 기사거리로 읽고 나면 배가 아프다. 죽을 만큼 일해도 저렇게 벌지 못할 텐데 하는 씁쓸함과 함께. <카지노>를 읽으며 대체 ‘부’라는 것이 ‘돈’이라는 것이 어떤 위치일까 하는 궁금이 일었다.

보이지 않는 욕망만큼이나 돈 또한 실체가 없는 느낌이었다. 그래, 길게 놓고 보면 과정이 중요하다.
사람이 걸어온 길과 시간들 그러나 생각만큼 그리 단순하지가 않다. 단순하게 생각해야되는데 단순하지 않다. 욕망과 돈, 허황된 것을 알면서도 나는 과연 놓을 수 있을까?

처음부터 지는 사람은 없어. 조금 이기면 긴장이 풀어지고 더 큰 욕심이 스멀스멀 기어 나오지. 그래서 사람들은 끝없는 욕망의 심연에 하염없이 돌팔매질을 하게 되고, 결국은 모두 그 욕심의 포로가 되어 파멸을 맞이하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