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구도, 질감, 색상…… 그리고 과정

이름

페르난도 겔런

내가 처음으로 합섭의 그림을 보았을 때 그의 작품에서 보이는 구도, 질감, 그리고 색상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개인적으로는, 구도, 질감, 색상이라는 이 세가지 영역이 시각예술을 결정하는 두드러진 요소라고 본다. 특히, 추상미술의 경우 이 세 요소는 기술적인 측면뿐 아니라 작가의 관념까지도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ARCO 2005가 열리던 해, 나는 박영덕화랑에서 처음으로 그의 그림을 볼 기회를 가졌었다. 세 달 후, KIAF(한국국제아트페어)에서 다시 그의 그림을 자세히 볼 기회를 얻었고, 며칠 후 서울에 있는 그의 스튜디오에서 그를 개인적으로 만날 수 있었다. 그 때, 그의 작품세계를 설명할 수 있는 위의 세가지 요소 외에 아주 근본적인 것처럼 보이는 한 가지를 더 추가해야 한다고 느꼈는데, 그것은 그의 작 품세계에 있어서 보여지는 하나의 전체적인 작업과정이다. 그것은 이미 완성한 작품에서는 포착하기 힘든, 작가의 배경과 그의 작품세계의 이론적 틀로부터 오는, 친숙한 이해를 요구한다.

한국 현대미술의 선구적인 인물중의 한 사람으로서 함섭은 한지 위에 전통적인 기 법과 현대의 실험적 기법을 놀라울 만큼의 확신을 가지고 표현한다. 물론 캔버스로 한지를 사용하지만, 한편으로 그것은 그의 부단하고도 힘겨운 변화의 장이기도 했다. 그는 고서적을 수집하여 그것이 섬유소불사조로 바뀔 때까지 작업실에 놓아둔다. 섬유소불사조는 그 서적들을 재로 만든 것들이 새로운 형태로 다시 바뀔 준비를 하다가, 그의 그림에 거의 조각품과 같은 질감을 나타내도록 하는 과정이다. 이 과정이 바로 그의 그림에 유기적인 생명력과 활력을 불어넣는 요소가 된다 .. 내가 함섭의 그림을 처음으로 보는 순간에 그 곳에서 행동회화를 창조했던 Pollock을 만났던 것 같았다. 이상한 점은 그의 작품 표면의 한지가 처음에는 눈에 확 띄지 않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첫 눈에는 극히 단순한 그림으로만 보인다 .. 그러나, 이 단순함을 물감과 고서적으로 캔버스에 덧칠하고 붙이는 작업을 통해 양각의 효과를 두드러지게 표현한다. 그리고 작품의 뒷면에 얇은 한지를 붙인 후 다시 고서적을 한 장씩 그 위에 덧붙인다. 그의 작업실에 물감이 칠해진 앞면이 벽으로 가게 한 상태로 싸여있는 작품들을 보면, 꼭 필기자가 적어놓은 책을 모아 놓은 더미인 것 같다. 오직 거꾸로 뒤집어 놓은 작품들을 뒤집어놓을 때 다른 측면을 볼 수 있다. 이것은 작품을 거꾸로 뒤집어 놓았을 때 느꼈던 미묘하고도 중립적이었던 인상과 대조되는 폭발적인 색으로 표현되는 작가만의 회화-조각의 언어이다. 이러한 놀라움의 은유가 바로 함섭의 작품에 잘 표현되어 있다.
여타의 훌륭한 추상작품처럼, 함섭은 스케치를 생략하고 색의 범위를 잘 이용하고 있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이 두께는 또 다른 윤곽을 형성하는데 이것은 아주 얇은 한지에서 두드러지게 보이는 특징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그의 작업이 새기거나 구멍을 뚫는 조각의 작업이 아니라 단지 캔버스에 덧붙이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을 회화라고 표현하기 보다는 회화-조각이라고 규정하는 이유이다. 이런 면에서 그의 작품은 종이와 물감의 이중의 덧붙임이다. 결과적으로 그의 작품은 표면이 동일한 구조나 잘 다듬어진 상태로 된 것이 아니라, 불규칙적이고, 홈이 파이고, 돌기가 섰고(위에서 썼었던 것처럼 꽤 유기적인), 그리고 거칠게 덧붙인 작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결과적으로 접하게 되는 인상은 조용하지만 강력한 특징이 있는 하나의 완벽하고도 시적인 통일성이다. 다시 말하면 그의 작품은, 대가에게서만 느낄 수 있는, 품위 있는 한 노인의 주름진 피부를 보는 듯한 인상을 준다.

함섭의 작품에 주로 쓰이는 색상은 Miro를 생각나게 하는데, 이런 파랑과 빨강색 계열의 두드러진 현상은 현대의 미적 경향이 진지한 색상과 미묘하고도 거의 엄숙한 색채상의 명암이 주를 이루고 있는 한국 현대 미술에서 지배적인 면이다. 황해 와 수 없이 흩어진 섬의 지리학적인 이점을 가진 한국은 내게 극동의 지중해 해안가와 같다. 그리고 함섭은 다른 동료들보다도 이런 감성을 작품에 잘 살려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