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展神의 한지

이름

서 성 록 (미술평론가)

-한 섭씨의 작품전에-

익히 알려진 바처럼 서양 미술이 「모방」에서 출발하여「추상」으로 발전에 왔다면, 동양의 화론에서 오랜 세월 동안 누누이 강조해온 것은 「사의(寫意)」, 즉 뜻을 그리는 문제였다. 그리하여 옛 부터 우리 조상들은 전통회화를「사의화」즉, 뜻을 그린 그림이라고 불렀다.
그런 동양의 「사의」를 서양의 「추상」에 맞추어 설명하면 흥미로운 결과가 나온다. 동양의 그림이 위진현학 시대로부터 정신, 혼, 생명 따위를 찾으려 매진해 왔으므로 금세기에 들어와서 비로써 추상을 발견한 서양미술에 비해 오랜 역사 및 정통성을 가지고 있다고 풀이할 수도 있다. 「사의」와「추상」의 이러한 단순비교는 일견 무모한 듯하지만, 어쨌거나 우리에게도 추상에 해당할만한 근거가 있었음을 확인시켜준다는 점에서는 음미해볼만한 대목이 아닌가 싶다.
함섭씨의 그림은 형태로 보나 발상으로 보나 「사의」에 속하는 것이요, 더욱이 신명, 가락 같은 것을 주제로 삼고 있다는 측면을 감안하면 전통회화에서 그토록 희원해 마지 않았던「전신(傳神)」의 경지까지 접근해가고 있다.
작가는 바깥세계 보다는 혼의 표출을 그의 그림의 한복판에 놓은 데 주저치 않는다. 그 혼을 작가는 신명이라는 무속적 언어로 치환시키지만, 그림 자체에서 우러나오는 질긴 생명감은 꽤나 뜨거운 열정의 파문, 알록달록한 색조가 엮어내는 자유로운 리듬, 그리고 보면 볼수록 빠지는 도취와 아울러 한층 더 농도를 더해간다. 국악의 가락에 맞추어 춤을 추듯이 흥겨운 한마당이 펼쳐진 것같은 인상을 받는 것은 필자의 소감만은 아닐 것이다.
「사의」가 그의 작업을 주도해가는 기본 개념에 속한다면, 함섭씨가 이를 구체화하는 방식은「한지」라는 독특한, 그러나 어느정도 보편화되어 있는 매재를 빌어서이다. 그 한지속에서 우리는 가냘프면서도 순후한 성질, 소박하면서도 풋풋한 숨결, 온화하면서도 담대한 우리 민족의 기질같은 것을 느낄 수 있는데 바로 이 점이 함섭씨가 한지의 유혹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dlb가 아닌가 싶다.
어떻게 보면 함섭씨만치「순수 토종」의 속성을 지닌 자가도 드물 것이다. 앞서 말한 신명 등 주제의 측면에서도 그렇고, 재료의 측면에서도 우리 고유의 「한지」에 전적으로 의지하다시피 한다. 실인즉 한지야말로「허세를 모르는 조촐한 마음」(최순우)의 상징이라 말할 수 있지 않은가? 그러니까 흔히 말하는 ‘우리다운 그림’으로 치자면 둘째가라면 서러워할지 모른다.
그에게 있어「한지」는 그의 조형세계를 이해하는 알파요, 오메가가 된다. 이유인즉 한지를 빼놓는다면 그의 작품을 반치는 중핵적 요소를 잃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만큼 그가 기용하는 한지는 폭넓게 활용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표정을 거느린다. 고정지를 비롯하여 국화지, 설화지, 닥지, 석회지, 장지, 순지, 닥피지등 온갖 종류의 한지는, 사람의 손이 아흔아홉번가고 사용하는 사람의 손이 백번째로 간다해서 백지(白紙)라고 불렀듯이, 그것이 태어나기까지 복잡한 공정을 거친 것이거니와 작가의 손을 거치면서 한단계 높은 차원으로 나가게 된다.

백번째로 한지에 손을 대는 그의 마음은 여간 가슴 설레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한지가 온전한 형체를 갖추기 위해서는 그의 예술적 몸짓을 절대 필요로 한다. 두껍게 배접된 한지의 한 부분을 뜯어내고 두드리고 밀어내고 다시 겹치고 붙이고, 그리고 끼어 넣기도 하면서 한지의 표면은 제각기 다른 성질을 갖게 되는데, 그 결과 생성된 표면이란 상처투성이, 즉 비바람에 간신히 견디면서 살아남은 노송의 헐벗은 표피를 연상시킨다. 투박하지만 힘이 샘솟고 인공의 완미(완미)를 갖추는 자연의 이치에 순응하는 넉넉한 도량을 발견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작가는 간지, 도배지, 배접지, 소지, 장판지, 창호지, 화본지, 혼서지 등 한지의 용도가 여럿이어서 온갖 종류의 텍스추어를 낼 수 있는 점에 착안하여 그 성질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유도해낸다. 하나하나의 재료를 골라 선택하는 일에서부터 콜라주를 하는 것, 삽입하는 것, 결합하는 것까지 모든 작업과정에서 한지의 고유성, 특질에 관한 정확한 통찰이 부수되어 있다. 물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속성을 응용하여 저 특유한 「담조미(淡調美)」를 얻어내는 것을 생각한다면, 그를「한지의 조련사」라 부르는데 하등 손색이 없을 것이다.
만일 오늘날 한지의 용도가 폐기되어가고 있다면, 함섭씨를 비롯하여 한지작업을 하는 작가들에 의해 새로운 형태로 그 형체가 복원되어가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이때의 복원이란 물론 전통을 단순히 재생시키는 데 그치지 않고 한지 자체의 우수성을 발견하여 예술적으로 풍부히 발전시킨다는 것을 뜻한다. 이와 같은 사정을 감안할 때 함섭씨에게 거는 기대감은 자연 커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의 작품에서 언급해야 할 또 하나의 부분은 색채 문제이다. 그의 재료가 야생의 자연에서 온 것처럼, 색감 역시 자연에서 직접 채취된 야생의 속성을 지닌다. 색동옷, 탱화의 울굿불굿한 운색으로 특징되어 그의 색감은 옻물, 도토리물, 치자, 엽초를 우려낸 물, 석회지 떠낸 물, 쪽물, 진달래, 꽃물 등에서 여러색, 즉 감색, 갈색, 치자색, 누런색, 푸른색, 분홍색, 따위를 얻어낸 것으로 천연의 색감을 보유한다. 물론 이렇게 해서 얻은 천연의 색은 기성의 색지와는 다른 성질을 지닌다. 강렬하기 이를 데 없으며, 또 은은할 때는 한없이 은은하여 풍성한 색가의 높낮이, 또 그 높낮이를 교묘하게 엮어 우너초적 생명력을 획득하기에 이른다.
아무래도 그 색가의 쓰임은 한국의 무속성과 관련하여 주목될 필요가 있으리라 본다. 현란한 원색이 풍기는 분위기가 굿의 의식행사처럼 보여질뿐만 아니라 그의 그림 전체에 스며 있는 알듯말듯한 신비성과 혼 또는 신명의 표출을 위한 하나의 시도로 읽혀지기 때문이다. 시나위를 방불케 하는 선묘의 자유로운 연주, 목탄에 의한 육필의 춤사위, 파격 효과와 어우러져 원색은 그 본연의 역할을 충실히 감당해내고 있는 셈인데, 거기서 우리는 혼과 결합한「전신」의 세계와 만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