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캔버스 위에서 韓屋창호의 만남

이름

金 福 榮 (홍익대학교 교수)

1.
제 2회전에다 내놓은 함섭의 평면작업은 그가 79년 이후 즐겨 다룬 가로세로줄이 있는 韓屋의 창호(窓戶)의 再現작업의 것이다. 79년 이전까지의 경향이 초가지붕의, 섬세한 올을 재현하던, 다소 다이나믹한 波動을 그리던 것에 비교하면 아주 조용한 그리고 밝은-연분홍 내지는 크롬옐로우, 아니면 옐로우오커가 스며있는 소담한 화이트의 – 모노크롬이다.
어찌하여 굴곡을 그리다가 잔잔한 평면의 단위 하나씩을 이어나가듯이 그려야 하는지는 그의 体驗的 變化를 이야기하지 않으면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技法의 측면에서는 종전의「긁어지우는」방법에서「덮어지움으로」 바뀌었다. 붓이 아니고 바운드가 있는 특수한 찍음새를 써서, 미리 구획된 창틀의 면적을 준비된 색료로 찍으면서 덮어나가는 것이다. 캔버스의 바탕에는 테이프작업에 의해 미리 격자형으로 비워놓은 위를 계속 덮어나갈 때 색료는 사각의 구획 속에 일정한 패턴을 남기면서 갇히든가 아니면 그 밖으로 넘쳐나가 미묘한 범람을 일으킨다.
그래서 남게되는 결과는 캔버스의 가장자리의 엷고 좁은 여백을 빼고는 가로와 세로를 그어나가는 구획의 드로잉 위를 발판 삼아 덮여지는 다소 여유와 유연성을 갖는「평면」이다.
이를 두고 함섭은 이렇게 말한다. “그저 종이와 나 자신이 하나의 캔버스에서 만날 수 있다면 좋겠다. 그 이외에는 나의 일체가 밖으로 드러나지 않고 그 안쪽으로 스미고 배어들어 물질의 내면성을 소유하는 결과가 되었으면 한다.” 그러면서 그는 가장 적합한 소재로서 창호(窓戶)를 생각해 냈다.
창호는 그에 관한 한, 예사로운 모티브는 결코 아니다.
그의 어렸을 때의 원초적 기억을 넘나드는 母情의 추억과도 같은 것이다. 살포시 정감이 물들고 감미로운 영상을 거기다 깔아놓고 의식 속의 빛깔이기도 한 창호는 그의 마음의 故鄕인 것이다.
거기서 그는 한국인의 마음의 주소를 은연중에 해석하려고 한다. 소담하고 친절하며 온건한 토운의 질료-이것이 그가 거기서 단번에 파악한 자신의 의식이자 우리의 의식의 表象인 것이다. 그래서「캔버스를 韓紙와 같은 부드러운 종이로 만들어가는 의식」이 거기에 나타난다.
2.
작품의 외적 형식은 가로세로의 格子를 은연중에 드러내는 데에서 시작해서 이를 점차 색료의 범람에 의해, 또는 중첩의 대담성과 이에 덧붙이는 샌드페이퍼의 가공에 의한 질감의 변형에 따라 점차적으로 지워나가는 과정의 점진이행을 밟는다. 그래서 최근에 이를수록 모노크롬의 평면은 더욱 평면 속으로 밀착되어 하나의 평면을 씸틀하게 결과시켜 놓는다. 흡사 오후 황혼무렵의 빛깔이 물든 창호의 영상이 거기에 나타나는 것이다. 밥냄새가 포근히 그 위에 배어드는 은연중의 정감의 톤이 의도없이 실현된다. 마치 징이 울고난 후 소멸의 소리들이 배면으로 사라지듯 모두를 품고 안은 함축된 톤의 平面이다.
따라서「浸透性」은 함섭의 평면에서 어김없이 드러나는 表面質의 특징이다.이를 위해 그는 덮고 또 덮어서 침투가 강화된 상태에서 진료의 참모습을 느끼기 시작한다. 그 위를 페이퍼로 문지르고, 마르면 또 그 위를 덮어찍고 해서 두터워진 그러나 한지처럼 부드러운 염감을 자아낸다.
3.
그의 平面의 탄생은 어김없이 기억과 의식의 깊이 속에서 탄생하는 결과를 드러낸다. 그를 보고 왜 그러한 반복을 계속하느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곧 그의 마음 속의 깊이에서 호소되어 나타나는 衝擊때문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평면의 表面이 바로 만족될 때까지 반복 운동하는 셈이라고 할 것이다.
말하자면 의식의 경험을 実体化시키고 肉化시키는 이러한 상황은 문자그대로 의식의 觀念을 代表케 한다. 의식의 경험을 의식 밖의 경험에다 직접 연결시킴 없이「직접」표출하는 直觀的 方法의 전형이라고 할 것이다.
따라서 함섭은 意識의 地平이 곧 자신의 作品이 딛고서는 장소라고 믿는다. 그래서 오늘도 내일도 의식의「現像」을 창호에 의지해서 혹은 지우고 혹은 더 더욱 칠하면서 그것의 참모습을 기다리는 것이다.
무엇이 이 경우 가장 의식의 참모습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는 물론 자기가 가장 사랑하는 창호를 캔버스에 직접 만났을 때라고 답변할 것이다.왜냐하면 그러한 만남이란 곧 자신의 의식의 기다림이 직접표현이라는 것을 굳게 믿기 때문이다.
1983. 5. 金 福 榮